2006년 4월 5일, AC밀란과 올림피크 리옹의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후반 43분까지 패색이 짙던 밀란에게 단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카카 칼라제의 긴 패스가, 볼 경합 중 넘어진 선수들을 지나 흘러 안드레이 셰브첸코의 발에 걸렸고, 셰브첸코는 지체없이 슈팅을 날렸다.
그러나 슈팅이 골 포스트를 맞았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에, 넘어져 있던 공격수가 그야말로 벼락같이 일어나 몸을 날렸다.
함께 넘어진 수비수가 미처 고개를 돌리기도 전의 일이었다.
필리포 인자기에 관한 나의 가장 강렬한 기억이다.

인자기는 흔히 말하는 좋은 선수의 조건과는 전혀 거리가 먼 선수였다.
유난히 약골이었던 몸싸움에서는 거의 모든 선수들에게 밀렸고,
어릴 적의 장기였던 스피드도 부상으로 채 서른이 되기 전에 잃었다.
드리블이나 터치는 수준 이하였고, 킥력도 평범 이하였던 선수.
가진 능력이라고는 오로지 슈팅밖에 없어 보였던 선수의 득점에
사람들은 기록에 비해 너무나 박한 평가만을 내렸고,
유벤투스에서 인자기는 트레제게와 델 피에로의 교체 멤버였다.
그의 출장은 주로 두 선수의 부상이나 휴식 때 이루어졌다.
소위 주워먹는 골이 유난히도 많았던 그는 주로 조롱거리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줍자기'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는 인자기는,
현지에서도 주로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가장 고평가된 선수'와 같은
주로 부정적인 투표에서 인자기의 위치는 늘 최상위권을 달렸다.
그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함께 데뷔했던 다른 선수들이
하나씩 은퇴하는 동안에도 그가 특유의 득점력을 유지하면서부터다.
원래 유난히 말랐던 이 약골 선수는 나이가 들면서 스피드가 쳐지자
이를 막기 위해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에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고,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연습 때는 늘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뛰어드는 훈련을 무한반복했다.
인자기의 득점 장면은 늘 쉽거나, 운이 좋아 보인다.
유난히 그의 주변에는 수비수가 없고, 흘러나온 공은 앞에 떨어진다.
하지만 많은 경기를 지켜봤다면, 그가 한 경기에도 수백번씩
수비수가 없는 곳으로, 슈팅한 공을 향해 달리는 것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수백번의 시도 끝에 그의 발에 걸린 공이 골이 된다.
철인이라고까지 불렸던 동료 가투소는 가장 열심히 훈련하는 동료가
누구냐는 질문에, 일순간의 주저도 없이 인자기를 꼽았다.
자기 평생에 본 인간 중에 '가장 지독한 놈'이라는 평가와 함께.
6개월짜리 부상을 두달만에 끊고 돌아온 그 독한 가투소의 말이다.
그리고 다음주에 만 39세가 되는 인자기는 드디어 은퇴를 선언했다.
현역 시절 확고한 주전 자리를 별로 누려보지 못했지만,
그는 다비 트레제게보다 36골, 심지어 델 피에로보다 한 골이 많은
288골의 대기록을 남겼다.
내가 가장 존경했던 축구선수, '수페르 피포' 인자기 얘기.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SUPER'라는 말은 그와 너무 잘 어울린다.
그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해낸 선수니까.